기사제목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1-14) 설교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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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1-14) 설교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기사입력 2017.05.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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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jpg▲ < 예화 : 워터게이트 사건 > 1972년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했으며, 닉슨의 보좌관 10명은 이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꾸민 음모가 3주가 되기도 전에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닉슨 정부도 막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10명의 보좌관이 꾸민 음모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 예화 : 워터게이트 사건 >

1972년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했으며, 닉슨의 보좌관 10명은 이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꾸민 음모가 3주가 되기도 전에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닉슨 정부도 막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10명의 보좌관이 꾸민 음모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꾸민 거짓이 18일도 채 못 넘겼는데, 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의 거짓말이라면 며칠이나 유지되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에는 순교까지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부활을 외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정말 부활했기 때문이고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부활의 증거를 허물어뜨리기 위한 수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성경의 증언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교회역사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는 항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부활을 믿고 체험하고 모이니 그들의 모임에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예배가 그랬고 그들의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이 그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임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예배와 성경공부, 그리고 기도와 봉사에는 감격이 있습니까?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가 있고 언젠가는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감격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수님.jpg▲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루이스 벌코프란 조직신학자는 네 종류의 의심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루이스 벌코프란 조직신학자는 네 종류의 의심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1)허위설:제자들이 죽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가고 거짓말을 만들어 유포했다고 하는 주장.

(2)기절설: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충격으로 기절했다가 무덤에서 깨어났다는 주장.

(3)환상설:제자들이 죽은 예수님을 너무 보고 싶어 헛것을 보고 살아난 것처럼 착각했다는 주장

(4)신화설:고대 중근동에 나돌던 사자의 부활 신화가 예수 전에 붙어서 만들어진 이야기란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들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14절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심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활하신 그날 저녁에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요 20:19-23). 두 번째는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를 위하여 8일 후에 다시 여러 제자들이 있던 곳에 나타나신 것이고(요 20:26-29)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대부분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법대로 두 사람 이상이어야 증인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어야 그 분의 죽으심의 의미와 가치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 가운데 특이한 것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시는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이 육체적인 것이며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의 대가로 육체의 죽음을 지불해야만 했던 우리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던 주님이 다시 그 생명을 회복하셨음은 곧 우리를 위하여 지불하신 죄의 값이 온전히 지불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죄책에서 해방케 하시는 능력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죄책감에서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당신 한 분의 개인적 사건이 아닙니다. 곧 우리들의 생명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친히 음식을 나누어주셨습니다.

 

부활절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믿는 주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들이 죽은 사람을 믿지만 우리는 살아 계신 주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처음 부르실 때와 똑같은 일을 베드로에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도 베드로는 빈 그물을 씻고 있을 때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셔서 많은 고기를 잡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역시 빈 그물의 베드로에게 이번에는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일을 행하심으로 베드로의 마음에 있던 본래의 신앙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가득 채워진 그물을 보고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물로 뛰어 들어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주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물고기가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계심을 발견 한 후에는 그 많은 153마리의 물고기보다 주님이 더 크게 보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열심히 사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일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3.jpg▲ 부활의 신앙은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곁에 항상 함께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 계신 주님을 인하여 승리한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분부하신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은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곁에 항상 함께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 계신 주님을 인하여 승리한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분부하신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저 갈릴리 시골 출신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훈련시키셨던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심겨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훈련하시면서, 그들이 한 동네 전도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들에게 언제나 다음 동네, 다음 단계, 다음 계획, 다음 비젼을 심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의 시야와 생각의 영역을 계속해서 크게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유대 지역으로, 다음에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원정 전도를 다니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부활하시자마자,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단어가 달라집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조그마한 동네나 마을이라는 단어에서 온 세상, 만민, 모든 민족, 모든 나라들로 비전의 폭이 달라졌습니다. 초라한 갈릴리 어부들을 좁아터진 유대주의에서 세상을 품고 나가도록 가슴을 넓게 펴고 세상을 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만약 예수 믿는 것이 십자가만 지고 끝나는 소망이라면 누가 예수를 믿겠습니까?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고, 고난을 이기고, 주님을 위해 땀을 흘리고 수고합니까? 부활의 영광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확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이 부활을 전해야 합니다.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부활의 감격입니다. 이 감격을 가지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 감격을 가지고 구역도 모이고,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해야 합니다. 이 감격이 없으면 우리들의 모임은 헛것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은 힘들기만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근심, 걱정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이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야할 우리의 모습 가운데 아직도 부활하신 주님 보다는 내 생각, 내 경험을 귀중히 여기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활하신 주님보다 내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귀중히 여길 때 우리의 삶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깊은 고난의 자리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고 순종했던 것에 대해서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반드시 재림을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권세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음으로 눈으로 바라보면서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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