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인성역전] 팀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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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역전] 팀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사입력 2017.07.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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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jpg▲ 일상생활에서 정말 많이 사용되는 ‘팀(team)’이란 단어를 우린 그냥 영어로 생각되지만, 실은 서양 사람들이 언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할 때 만들어진 고대어이다. 어원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9세기 경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북부 지역에서 ‘짐을 끌 사슴, 개, 말, 소 등이 잘 묶였다’는 의미로 쓰던 타움(taum)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정말 많이 사용되는 ‘팀(team)’이란 단어를 우린 그냥 영어로 생각되지만, 실은 서양 사람들이 언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할 때 만들어진 고대어이다. 어원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9세기 경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북부 지역에서 ‘짐을 끌 사슴, 개, 말, 소 등이 잘 묶였다’는 의미로 쓰던 타움(taum)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팀’이란 말의 한참 후손격인 라틴어에서는 ‘tau’ 음가를 차용하지 않고 ‘묶여있는 말, 소’를 ‘이우금(iugum)’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물론 라-영 사전을 찾아보면 ‘team’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팀이라는 단어의 어원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언제 만들어 사용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된 ‘팀’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성을 갖추기 시작했던 그 처음부터 함께 한 시원적 단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떤 사람이 어떤 ‘팀’(나라, 민족, 고향, 회사, 출신학교, 동아리, 동호회, 카페 등등 다 좋다)의 일원이라는 것은, 그가 ‘사람으로서의 기본(전제)’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사회성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임을 포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팀은 우리가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둘째, 팀은 짐을 운반하는 영특한 동물들의 무리를 일컫는 단어이다. 인간이 가축으로 삼아 온 동물들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종은 개, 말, 소 등이다(돼지도 머리는 좋은데,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꼼수를 부려, 식용 전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동물들의 특징은 다들 나름의 개성이 있고, 함부로 대했다가는 삐치기도 하는 매우 감성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동물들을 다루기는 쉽지 않고, 숙달된 조련사가 되기 위해서는 동물들의 개개의 성향과 감정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만큼 머리가 좋은 동물들은 반대로 조련사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 조련사가 해야 할 조련을 동물이 대신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즉 동물이 동물을 조련하는 것이다. 눈썰매는 사람보다는 개들을 끌어가는 한 마리 개가 썰매를 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조련사가 리더 역할을 하는 개만 잘 통솔하면 그 개가 알아서 나머지 개들을 리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련사의 입장이 될 수도 있고, 썰매개들의 리더 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감성적 소통 능력이다.


셋째, 어원을 따르면 팀의 구성원들은 ‘묶여 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되기를 바라지 않지만, 사회 활동 속에서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집단을 벗어나거나 질서를 해치려는 다른 구성원이 있을 때 우리는 그를 말리기 마련이다. 우리가 각자 짊어지고 있는 이 굴레를 잘 끌고 나갈 때 사회라는 더 큰 썰매도 잘 나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묶여있다는 사실은 나를 옥죄는 사슬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나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지혜.jpg▲ 한편 인간의 속성에는 사회성 말고 다른 성질도 있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는데, “인간은 지혜로운 존재다”라는 말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명언도 있다. 이 두 명제를 연결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지혜로운 존재라는 인간은 자기를 만물의 척도라고 한다.” 혹은 “자신이 만물의 척도라고 하는 인간은 자기를 지혜로운 존재라고 한다.” 헐. 어떻게 연결해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편 인간의 속성에는 사회성 말고 다른 성질도 있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는데, “인간은 지혜로운 존재다”라는 말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명언도 있다. 이 두 명제를 연결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지혜로운 존재라는 인간은 자기를 만물의 척도라고 한다.” 혹은 “자신이 만물의 척도라고 하는 인간은 자기를 지혜로운 존재라고 한다.” 헐. 어떻게 연결해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두 문장을 왜 명언이라고 할까? 우선 ‘지혜로운 인간’을 살펴보자.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지식은 참인 것만을 일컫는 것이지만, 지혜는 거짓까지도 끌어안는다. 예를 들어 “시작이 반이다”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선조들의 지혜를 비교해 보자. 이 두 속담을 함께 보면 대체 먼 길을 가라는 건지 가지 말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지혜롭다’는 말 자체가 모순된 내용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지혜롭지 못한지를 아는 사람을 말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소크라테스도 “I know that I don’t know”라고 했다. 우리 속담에도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탓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 제대로 처신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반성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존재(Homo sapiens)라는 말은 반성하는 존재라는 말로도 해석되며, 이를 철학적으로 대자적(對自的) 존재라고도 한다. 우리말로 풀면 ‘나를 대상으로 바라보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즉 지금 내 생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thought to thought) 존재라는 것이다. 팀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지혜롭게 대처하자. 타인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판단하라!


다음으로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살펴보자. 이 역시 모순된 내용을 안고 있는데, 우선 ‘만물’을 인간 외의 모든 것으로 이해할 때는, 인간만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척도를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말이 된다. 이는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만물’을 ‘타인’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는, 인간은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말이 된다. 이것이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이기주의, 개인주의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이 모순된 내용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척도’라는 개념이다. 


척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원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점의 차원과 선의 차원을 생각해보자. 선의 차원에서 직선 1㎝는 직선 10㎝보다 분명히 짧다. 하지만 점의 차원에서는 두 직선 모두 동일한 수(무한)의 점을 가지므로 차이가 없다. 차원(관점, 견해)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성을 아는 존재일 때 우리는 만물의 척도라고 불릴 수 있다.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서로 어떤 관점의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보아야 하겠다.


팀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측면에서 얼마나 부족한지를 분명히 알 때 그에 대해 다른 구성원들의 도움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른 구성원들의 지적도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의 부족한 면을 찾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다음으로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을 충돌을 충돌로 볼 것이 아니라 차이로 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갈등은 서로의 대한 직접적인 반대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국 관점, 견해 등의 차원의 문제이다. 왜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의 ‘입장’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정윤승 교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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