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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과의 인연

기사입력 2017.09.2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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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jpg▲ 사진:픽사베이
 


사람들은 풀무원식품을 풀무원이라고 알고 있다. 풀무원은 무농 약으로 농사를 지으며 성경공부를 하며 생활하는 공동체모임이고, 풀무원식품은 식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풀무원식품은 초창기에는 풀무원 내에 공장을 짓고 풀무원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콩을 이용 하여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생산하던 식품업체다. 내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농한기인 여름과 겨울철 농한기에 풀무원에 가서 한 달간 성경공부를 하며 무공해 농사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때 한 달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성경공부를 하는 성서단기대학 과정이 있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남자가 10여 명, 여자가 10여 명으로 약 20여 명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매일 성경을 읽고 서로 토론을 하기도 했고 함석헌옹이나 문익환 목사 등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당시 풀무원은 기독교인들이 모여 무공해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그때 다섯 가정이나 여섯 가정이 함께 살면서 낮에는 공동으로 농사일을 하고 취사도 공동으로 하면서 저녁에 는 함께 모여 성경공부를 하는 신앙인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이 다. 혹시 손님으로 누가 방문하더라도 공동식당에서 먹어야 하는데 누가 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본인이 먹을 만큼 밥과 반찬을 직접 갖다가 먹어야 하고 식사 후 설거지도 직접 해야 한다. 원경선 선생님이 무공해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무농약, 무화학비료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농사짓는 땅도 원경선 선생님과 뜻을 함께 하는 분이 무상으로 기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초기에는 병충해로 인하여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곤충 중에는 해충(害蟲)보다는 익충(益蟲)이 더 많다고 한다. 오랫동안 농약을 살포하다 보니 면역성이 약한 익충은 자꾸 줄어들고 해충은 저항력이 점점 강해져 점점 농도가 진한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 되다 보면 결국 농약의 유해성분이 농작물에 남아 있게 되고, 우리는 그식물들을 먹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임산부가 기형아를 출산하 기도 하고 각종 질병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저항력이 강한 해충은 점점 더 저항력이 강해지다 보니까 농약을 주다가 농약을 안 주게 되면 해충으로 인하여 농사를 거의 망치게 된다. 하지만 계속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면 익충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나중에는 익충이 해충을 잡아먹어 해충의 수는 점점 줄어들게 되어 농약을 살포하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내가 풀무원에 머물 때 정농회가 열렸다. 일본에는 ‘애농회(愛農會)’(일본에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농사를 짓는 모임)라는 단체가 구성되어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정농회(正農 會)’(농사를 바로 짓기 위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자는 모임)라는 단체가 구성되어 있는데 두 단체는 서로 교류를 갖고 있었다. ‘정농회’라는 단체는 “농사를 바로 짓자”며 구성된 모임으로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참으로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모내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벼잎 뒤에 붙어서 벼잎을 갉아 먹는 똥 벌레라는 것이 벼잎을 갉아먹어 벼잎이 하얗게 변했다. 벼잎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까지 갉아먹으니까 사람들이 농약을 안주면 농사를 망친다며 농약을 주라고 했다. 그래도 농약을 주지 않으니까 농사에 경험도 없는 애가 고집만 부린다느니 하는 등 동네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농사를 망치면 망쳤지 농약을 끝까지 주지 않았다.

당시 농사를 지으면서 나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기로 했다. 농약 중에 가장 나쁘다는 제초제(잡초의 발아를 억제하는 농약으로 가장 해로운 농약)부터 쓰지 않기로 하고 모내기를 한 후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농사짓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농약은 살포하지 않더라도 제초제는 뿌릴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난 끝내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니 논에 잡초가 빼곡하게 올라왔다. 그냥 놔두면 벼보다 잡초가더 많아질 것 같았다. 농사를 망칠 것 같았다. 전에 아버지가 쓰시던 제초기(논에서 밀고 다니면 바닥의 흙을 파서 뒤집는 역할을 하는 농기구)가 생각이 나서 찾아봤더니 집에 한 개가 남아 있었다.

논이 4군데 있는데 하루에 한 군데씩 아침에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 후에 밀고 다녀야 했다. 벼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매일 제초 기를 밀고 다녀야 했다. 제초제를 주지 않으니까 일이 훨씬 많이 늘어났다.

막상 가을이 되어 탈곡을 해보니까 전에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실 때보다 오히려 수확량이 많다며 탈곡을 하러왔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농작물도 산소 공급이 필요한데 내가 매일 아침 제초기를 밀고 다니며 흙을 뒤집어 놓아 벼에 산소가 잘 공급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원경선 선생님은 농약의 사용은 장차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후손의 삶의 터전을 병들게 하고 농약이 우리의 몸에 계속 축적되면 자신이 죽기도 하겠지만 임신부가 기형아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적극 권했다.

풀무원은 무공해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삶을 살게 하자는 것이 보다 큰 목표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경제적으로 유익이 된다면 다른 사람의 삶이야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금방 물에 씻어서 날로 먹어야 하는 채소에도 벌레가 먹지 말라고, 썩지 말라고 농약을 뿌린다. 채소나 과일을 사가는 사람들이 보기 좋은 것을 골라 사가기 때문에 농민 들도 농약을 살포한다고 한다. 도시민들이 농약이 묻은 과일을 선택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도시민들이 좋아하는 농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릴 때 교회에서 ‘여우’라는 연극을 본적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신기한 거울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거울로 사람을 쳐다보면그 사람이 여우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거울이다. 한 사람이 그거울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니까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여우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모두 여우였던 것이다. 결국에는 여우들이 진짜 사람을 보고 “여우 잡아라”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세상이 모두 여우로 변해 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다 참답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여우에게 모두 빼앗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만 죽으면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 땅에 우리의 후손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후손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식이나 손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삶의 좌표를 확고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풀무원에 머물면서 각종 모임에 참여했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게 비록 어려 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참(眞)을 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했었다.

풀무원에서 농한기에 함께 생활하는 동안 정농회가 열렸다. 정농 회는 농사를 바로 짓자는 모임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자며 구성된 모임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성공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 각자 현장에서 경험한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발표 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이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나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다.

논에 거름을 낼 때 동네사람들 대부분 봄에 날이 풀리면 지게로 져서 나르는데 장화를 신고 논에 들어가 보니까 발이 빠져서 한쪽 발을 빼면 다른 쪽 발이 빠지고 다른 쪽 발을 빼면 또 다른 쪽 발이 빠졌다. 그러다 보니 거름을 내는데 많은 시일이 걸리고 무척 힘이 들었다. 처음으로 농사를 지으며 왜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해부터는 논이 얼어 있는 겨울에 거름을 내니까 동네 사람들이 거름기가 다 빠져나가게 겨울에 거름을 낸다고또 한마디씩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겨울에 거름을 모두 내 버렸 다. 그랬더니 발이 빠지지 않아 힘도 안 들고 일도 쉬웠다.

요즈음은 무공해 농산물을 파는 가계가 많이 생겼다. 일반 채소 보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만 무공해 식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무공해 식품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있게 되었다. 내다 팔 만큼은 안 되더라도 우리 식구 먹을 만큼은 무공해 농사를 지을 생각이다.
[김운영작가/최창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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